열중 Summit.
새 집의 좋은 점을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NHK BS1, 2와 STAR TV가 나오는군요. 뭐가 좀 문제가 있는지 BS1은 화면 노이즈 등이 많아서 제대로 보기 힘들지만 BS2는 그럭저럭 볼만했습니다.

지난 주말, BS2에서 '熱中 SUMMIT'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국의 熱中人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버라이어티 쇼프로(?)였습니다. 여기서 '熱中人'은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매니아' 혹은 '오타쿠' 정도의 느낌입니다. 왜 '熱中人'이란 말을 새로 만들었는지는 조금 의문이지만요. '오타쿠'가 아직도 방송금지용어이진 않을텐데..

하여간, 별의별 희한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대거 등장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을 몇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에피소드 1.

1.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총기류를 수집하는 웨스턴 열중인이 있습니다. 당연히 아저씨죠.
2. 그 열중인이 쫙 빼입고 - 당연히 카우보이 복장 - 찾아간 곳은 중년의 고무줄총 열중인이 사는 집입니다.
3. 고무줄총 열중인은 학생때부터 온갖 종류의 고무줄총을 만들어 왔고, 전국 고무줄총 사격대회를 개최한 사람이랍니다.
4. 고무줄총 열중인의 지도로 웨스턴 열중인이 자신의 비장의 콜렉션과 같은 모양의 고무줄총을 만듭니다.
5. 그것으로 스튜디오에서 전국 고무줄총 사격대회 챔피언과 대결!!

에피소드 2.

1. 우체국에 예금을 하면 통장에 찍어주는 '**우체국' 이라는 고무 스탬프를 모으는 자매가 있습니다.
2. 그 우체국 스탬프 중에는 특산물 그림 등이 들어간 이른바 '레어'가 있는 모양입니다.
3. 그 자매는 전국의 우체국을 돌며 100엔씩을 입금해서 우체국 스탬프를 모아 왔습니다.
4. 연휴를 틈타서 자매는 어느 섬의 우체국 수십군데를 돕니다. 호텔방 잡고, 렌터카 빌려서..

에피소드 3.

1. 아파트 건물 사진을 찍어 모으는 열중인 형제가 있습니다.
2. 방송 고정출연자 중에 클래식 카메라 등에 조예가 깊은 '박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3. 형제와 박사는 어느날 아침 어떤 아파트 사진을 찍어서 결과물을 비교하는 경쟁을 합니다.
4. 형제는 거의 최고 수준의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고, 사진 안에 사람이나 까마귀 등 건물 외의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립니다. 기회가 안오면 그날은 공치는거죠.
5.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서 형제는 박사에게 한참 멀었다고 핀잔을 줍니다.

에피소드 4.

1. 곤충 중에서 특히 나방 수집에 열중하는 여고생이 등장합니다.
2. 휴일 밤,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후지산에 가서 나방을 채집합니다. 화장실 안쪽 벽도 놓치지 않습니다.
3. 그 여고생의 집 냉장고에는 잡은 나방 등의 곤충이 즐비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포기한 듯.

에피소드 5.

1. 라면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중년 아저씨가 있습니다. 이 아저씨는 지난번에도 프로를 뛰어넘는 맛을 선보였었습니다.
2. 그 아저씨 집의 부엌이며 냉장고엔 라면 재료들이 가득하고 책장에는 라면 관련 책, 잡지, 만화들이 빼곡합니다.
3. 맛은 끝내주지만 장사를 하려면 사람들이 사먹을만한 가격의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저씨는 새로운 재료에 도전합니다.
4. 휴일에 부엌에서 라면 개발에 열중인 아저씨. 그런 아저씨에 질렸던 듯 마누라는 아이를 데리고 놀러 나갔답니다.
5. 조개(?)를 쓴 새로운 맛의 라면을 만드는데 성공! 스튜디오의 라면집 세트에서 출연자들에게 직접 라면을 끓여줍니다. 다들 좋다는군요. 아저씨는 장래에 라면집을 내려고 한답니다.

.. 이런 류의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벌레로 음식을 만드는 전문가는 스튜디오의 출연자들에게 벌레가 든 막대사탕을 돌리고, 아마추어 레슬링에 열중하는 아저씨들은 복면 레슬러의 복장으로 출연, 잠수와 비행이 가능한 오징어 모양 무선조종 모형을 만드는 꼬마, 멋진 야경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는 청년, 깡통 꼭지를 모아서 옷을 만들어 입는 아주머니, 헐리웃 SF 영화의 거대 피규어를 만드는 사람, 새로 운행을 시작하는 전철 노선을 찾아다니는 할아버지 등 정말 온갖 취미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한다면 '기인열전'쯤 되려나요.

그냥 보기에도 재미가 있었지만,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세상엔 저렇게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서로가 서로의 취미를 인정해 주고 있으며, 무엇이 되었건 열중할 것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얘기..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혹은 모든것을 걸고 -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by areaz | 2005/06/07 16:26 | 본것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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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gtA at 2005/06/07 16:47
이미 많이 쓰이고 대중화된 말이지만 오타쿠가 방송금지용어라더군요. =ㅅ=
Commented by 억군 at 2005/06/07 18:08
"열중인" 그것과는 다른 조금더 긍정적인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메르키제데크 at 2005/06/07 19:16
열중인... 거기에 솔로부대가 더해지면.. 무섭습니다.
Commented by jamf at 2005/06/07 22:41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군요.
한국도 저렇게 다양성을 인정해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5/06/07 22:54
저도 몇번인가 봤던 프로군요. 철도 매니아 아저씨하고, 옛날 장난감 수집하는 할아버지 등이 생각나네요.

NOT DiGITAL
Commented by 레이 at 2005/06/07 23:39
세상은 넓군요.
Commented by areaz at 2005/06/08 09:32
to SgtA
아직도 방송금지용어인가요.. -_-;

to 억군
적어도 '매니아'나 '오타쿠' - 이건 좀 다르지만- 가 가진 단어 자체의 부정적인 의미는 없으니까요.

to 메르키제데크
그래도 저들 중에 솔로는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그게 더 멋지달까..

to jamf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 여유가 없어보이죠.

to NOT_DiGITAL
슬슬 BS2 프로그램 체크에 들어가야 하려나봅니다.

to 레이
넓기보다는 인간의 개체수가 워낙 많아서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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